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무조건 12시까지 야자를 했다. 의무적으로 잡혀있어야 했는데, 그때 나를 키운 8할은 전영혁 선배님 방송이었다. 음질이 좋다고 해서 크롬 테이프나 일본 TDK 테이프 천 개를 사서 날마다 모든 방송을 녹음해가며 들었다. 팻 메시니나 필 만자네라 같은 생소한 아티스트도 그 방송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다. 오잔나의 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날 눈이 무척 많이 왔는데 그 곡을 처음 들었다. 듣는 순간 눈이 오는 배경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일부러 길을 돌아서 갔다.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길이었는데 언덕길로 돌아가면 40분 정도가 걸렸다. 처음 들은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제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래 제목을 잘 못 알아들었고 또 하필 그때 테이프가 빨리 끊겨서 노래 제목을 말해..
아버지가 워낙 음악애호가셨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고등학생 때는 밴드에서 트럼펫도 부셨다. 기본적으론 클래식 애호가셔서 나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 따라서 음악을 많이 들었다. 내가 삼남매 중에 막내인데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아서 성격이나 음악 듣는 게 비슷했다. 아버지가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면 언제나 나도 같이 오디오 옆에 있었다. 그때 들었던 것들이 지금 음악 일을 하는 것에 연결이 됐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음악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트윈 폴리오의 이다. 그 노래를 아버지가 그렇게 부르셨다.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성악곡도 좋아하시고 오페라 아리아 남자 노래 같은 걸 성악 발성으로 간혹 부르셨는데 대중가요 중에서 유일하게 좋아하시는 가수가 송창식, 그 중에서도 이었다. 아버지가 갖고 있는..
중2때였나. 아직 음알못이라 음악 잡지에서 좋다고 하면 일단 사서 들어보던 때였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하도 좋다길래 CD로 구입해 듣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런 걸 '펑키하다'고 하는 건가?' 해설지를 보니 펑크(funk)의 영향이 강한 밴드라고 쓰여 있었다. 평론가의 해설을 듣지 않고 정확히 장르를 맞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 내가 장르도 맞출 수 있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계보니 족보니 따져가며 음악을 들었던 게 말이다.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 그 첫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음악평론가로 살고 있을까? 음악사를 치열하게 파고들거나 모를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낄까? 친구들보다 잘하는 유일한 분야를 찾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래들에게 젠체할 ..
난 여행 갈 때도 늘 시디를 갖고 다니고, 또 여행할 때만큼 음악을 열심히 들을 때도 없다. 예를 들어 부다페스트, 이러면 그때 들었던 음악이 생각이 난다. 내가 책 때문에 희귀한 여행을 많이 했다. 피지에 영화 를 찍은 모누리키(Monuriki)라는 섬이 있다. 거기는 무인도라 아무나 못 들어가는데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1박2일 동안 머물 수 있도록 현장에 있는 추장 같은 사람에게 돈을 내고 하룻밤을 자고 왔다. 거기 해변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다가 추워서 깼는데 막 동이 트고 있었다. 일행은 자고 있고 나 혼자 아이팟을 귀에 꽂고 걷는데 그때 트렘블링 블루 스타스의 이 흘러 나왔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정말 감정이 격앙됐다. 그 노래 가사가 또 한 문장 빼고는 다 의문문으로 이루어져있다. 제목부터 ..
열 살 땐데 이게 되게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 언덕이 많은 동네에서 살았는데 그때 학원을 많이 다녔다. 남동생이랑 한 살 터울이어서 나는 학원엘 보내고 엄마는 남동생을 돌보고 그랬던 거다. 주말에도 학원을 다녔는데 내가 언덕 높은 쪽에 살아가지고 학원 봉고차가 동네를 빙글빙글 돌며 애들을 다 내려주고 내가 제일 끝에 내렸다. 그래서 항상 봉고차 앞엘 탔는데 어릴 땐 차 앞에 타면 뭔가 된 것 같고 좋지 않나. 그 맨 앞에 앉아서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같이 다녔다. 그날이 토요일인가 일요일인가 주말 오전이었는데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날씨가 되게 좋은 날이었다. 주말 아침 특유의 청명한 햇살이 쫙 비추는 너무 기분 좋은 날씨였다. 앞자리에 앉아가지고 신나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그때 윤상의 ..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너무 그런 경험들이 많지 않나. 정말 많은 기억들이 있는데 제일 임팩트가 있었던 건 1994년이었다. 그때 조쿨이라는 밴드를 만들고 나서 멤버들과 땡땡이거리(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기찻길)에 고갈비 같은 걸 파는 땡땡이라는 실내 포장마차엘 자주 갔다. 그날도 새벽까지 (이)기용(허클베리 핀)이랑 술을 먹고 나왔는데 그 순간이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난다. 6월이었고, 막 더워지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다. 그때 워크맨 시디피를 들고 다닐 때라 전철을 타러 신촌역으로 가면서 [세상 밖으로] OST를 들었다. 그 OST에서 심혜진이 부른 란 노래를 진짜 좋아했다. 그 노래가 '90년대 노래 같지 않게 리버브도 되게 많이 넣었는데 리버브가 많이 들어가면 안개 같은 느낌도 나고 ..
비틀스 [1]의 발매에 맞춰 영국 리버풀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EMI에서 정킷(junket) 형식으로 지원을 해줘서 리버풀과 런던의 비틀스 명소 투어를 했다. 비틀스가 마지막으로 공연한 옥상에도 올라가보고, 애플 런던 본사, 리버풀에 있는 비틀스 박물관, 케이번 클럽, 케이번 클럽에서 공연하기 전 비틀스가 진짜 처음 공연했던 동네 커피숍 등을 다 돌아다녔다. 내가 역설적으로 충격을 받은 데가 '페니 레인'이었다.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충격이었다. 케이번 클럽 같은 곳은 가서 보면 정말 좁아서 '이런 곳에서 공연을 했던 거구나.' 하며 인상 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페니 레인은 진짜 아무 것도 없는 시골 국도다. 그나마 비틀스가 뜬 다음에 만든 걸 텐데 하얀 담을 세우고 거기에 페니 레인이라고 ..
우리 아빠도 생각보다 음악을 많이 좋아하셨는데 더 대박은 할아버지가 닐 영을 알고 계셨다. 너무 어렸을 때라 어떻게 아시게 됐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는데 아빠가 비틀스를 들려줬다면 할아버지가 닐 영을 알려줬다. 클리프 리처드 이런 사람을 아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선가 닐 영을 듣고 그때부터 좋아하신 것 같다. 할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사셨는데 원래는 끼가 진짜 많은 분이셨다. 글도 너무 잘 쓰시고 노래도 잘하시고 딴따라 기질이 있는데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공무원으로 사신 거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중학교 1학년 때였나, 방학 때 할아버지가 들려준 닐 영이 아빠가 들려준 비틀스보다 더 좋았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애가 닐 영 음악을 뭘 알까 싶지만 괜히 그냥 너무 좋았다. 그때 처음 이게 닐 영이고 ..
영국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 노마 윈스턴은 살아 있는 동안 꼭 한 번 마주하고 싶던 인물이었다. 그녀가 한국을 처음 찾은 건 2013년 9월에 열린 을 통해서였다.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며칠 동안 그림자처럼 그녀의 뒤를 따랐다. 첫 번째 연주는 9월 4일, (예술의 전당이 아닌) EBS 에서 펼쳐졌다. 사운드 체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그날 연주할 곡목을 정할 때가 됐다. 머지않아 발표될 새 앨범의 곡들이 하나둘 큐시트의 빈칸을 메워갔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앙코르도 준비해야 하나요? 보통 녹화 분위기가 어때요?""대개는 준비하십니다. 물론 오늘은, 요청이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겠고요."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곡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한 10여년 전에 네이버가 부산영화제 메인 스폰서였는데 그때 나는 네이버 전체 콘텐츠 서비스를 맡고 있었다. 부산 가면 항상 파라다이스 호텔에 내 방이 딱 있고 황금기였다(웃음). 그때만 해도 늘 휴대용 시디피와 시디 30장을 낱장으로 넣을 수 있는 케이스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 않나? 어디에 놀러 가느냐,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듣는 음악이 바뀌지 않나. 예를 들어 기차를 타면 거의 팻 메시니 같은 음악을 들고 가고, 밤에는 '50년대 모던 재즈 이런 걸 듣고 상황에 맞게 시디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날은 숙소를 나선 뒤에 시디 케이스를 놓고 나온 걸 알게 됐다. 시디피만 들고 나왔는데 시디는 하나도 없었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데 'X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영화..